오늘 아침 전체 기획회의 시간의 일입니다.
갑자기 신입기자들(박근형 변진경 천관율)이 A4 한 장짜리 기획서를 내밀었습니다. 촛불집회 현장 중계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.
모두들 뜨악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습니다.
<시사IN>은 시사주간지입니다. 일주일에 한 번 나오고, 잡지입니다. 당연히 중계 장비도 없습니다. 그런데 현장 중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.
비유하자면, 시사IN과 집회 현장중계의 관계는 마돈나와 순결의 관계만큼, 이명박 대통령과 겸손만큼 거리가 멉니다. 그런데 이제 갓 수습을 뗀 신입기자들이 중계를 하자고 덤비는 겁니다.
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, 선배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.
매일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그들은 시시각각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상황을 담아내기에는 주간지라는 매체 형식이 얼마나 한계가 명확한지 절감했을 것입니다.
다음 주에, 독자가 읽는 순간에도 여전히 뉴스가 될 수 있는 ‘지속 가능한 뉴스’를 써야 한다는 것이 바로 주간지 기자의 어려움입니다.
저는 아예 거리편집국을 차리자고 제안했습니다.
촛불집회 현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국민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잘 정리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해 주자고,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게 만들자고 했습니다.
거리로 나가자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.
이런 시기에 기자들이 편집국에만 앉아있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 아니냐? 는 것과, 1인 미디어 시대에 시민기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거리에서 그들과 직접 경쟁해야 된다는 것과, 마지막으로,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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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랬습니다.
시사저널 파업 이후, 우리들의 고향은 거리였습니다.
시사저널 사무실 앞거리
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
용산의 후미진 건물 낡은 방
방송회관 방송노조 사무실
북아현동 심상기 회장 집 앞 골목,
우리를 받아주는 것이면 아무 곳이나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.
‘신발보다도 더 자주 사무실을 바꾸면서’ 파업과 창간을 견뎠습니다.
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, 우리는 거리로 돌아왔습니다.
시사저널 파업과 직장폐쇄, 결별, 그리고 시사IN 창간에 성원해주셨던 열혈 독자들이 왠지 거리에 나와 있을 것 같아 그분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도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.
우리의 사연을 듣고 격려하고 성금을 보내고 정기구독을 해주었던 그들이, 촛불집회에도 나와 있을 것 같았습니다.
문정우 편집국장이 결단을 내렸습니다. 주진우 기자가 현장 상황실장을 맡았습니다. 그리고 몇 시간 후, 청계광장(괴상한 조형물 때문에 소라광장이라고도 불리죠) 한켠에 거리편집국이 꾸려졌습니다.
첫날은 준비가 너무나 부족했고, 비도 많이 와서 그냥 시스템 점검한 것 정도로 만족해야 했습니다.
하지만 화요일엔 많은 독자를, 많은 시민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.
혹 어떤 분이, 촛불집회 덕분에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정기구독자가 는다니까 시사IN도 덕 좀 보려는 것 아니냐? 숟가락 얹는 것 아니냐? 라고 말하시면, 아니라고는 말 못합니다.
정기구독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광고주들이 광고를 주지 않아, 시사IN은 ‘안정적인 적자구조’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.
독립언론’의 길은 험난합니다.
그래서 살아보려고 이렇게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나왔습니다.
이야기가 더 길지만…….
나머지 이야기는 현장에서 촛불을 마주 들고 나누도록 하지요…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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